***** 운영은 실의에 빠져 매일 말도 안 되는 양의 술을 마셨고, 하루하루는 지나갔다. 드디어 옹주를 부인으로 맞이하는 날이 밝았다. 그의 울적한 심회와는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은 왕의 여식을 처음 본다는 환상과 큰 잔치가 열린다는 것에 사방 들떴다. 운영 개인의 혼사가 아니라 큰 명절을 맞이한 아침과 같았다. 신랑보다 몇 살 더 나이를 먹었다는 신부는 ...
***** 배고픔과 죽음은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했는가? 운영이 집안에 칩거한지 열흘이 넘었다. 그는 묵언시위를 하고자 하였으나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방안에 대자로도 누워보고 가로도 앉아도 보았지만 딱히 난관을 해결한 궁리가 나올 리 있을까. 어느 날은 강가로 나가 몇 번이나 죽겠다고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태생이 물을 무서워하였다. 멀리서 보면 ...
*** “아버지, 혼사가 잡혔다니요. 갑자기... 아무리 집안 간의 결혼이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언질은 미리 주셔야 하는 게 아닐지요.” 운영은 자못 큰 목소리로 반발하였다. 욕만 안했지 반항기의 젊은이의 패기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진수는 그를 기가 차다는 듯 쳐다보았다. “언질은 무슨 언질이냐. 네 녀석이 조용히 방에 앉아있어야 할 것 아니냐? 네가 며칠...
*** 운영의 나이가 혼기로는 차고 넘치는 20세가 된 해 봄은 예년과 다르게 기온이 높아 초여름과 같았다. 시절을 따라 순을 지켜 처녀가 얼굴을 보여주듯 꽃잎을 틔었던 화목들은 그 바람에 화들짝 놀랐다. 늦었다고 생각한 듯 제각기 서둘러 만개하여 사방이 온통 화려하였다. 재산이 많은 집안도 아니고 지위도 없는 운영이지만 그나마 봐줄 만한 외모와 꽃 배경 ...
*** 성조(星祖)가 전왕조의 마지막 저항군을 굴복시킨고 선국(鮮)을 개국하였을떄 백성은 전왕조의 오랜 착취로 인해 기아상태였다. 땅은 그대로인데 나라 이름만 바뀌었으니 환국의 전란 속에서 어디까지가 논이고 산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버려져 있었다. 그는 말위에서 잠을 자고 우물물을 손으로 움켜 마시며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선국의 2대 임금 이희(希...
** 운영은 이번 생에서 자신이 굉장히 분주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는 두 명이요, 거기에 곧 한 명이 늘어날 예정이었고 자신에게 마음을 주는 건지 안 주는 것인지 헷갈리는 정인은 이토록 오매불망 만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최근의 영의정의 동태 또한 수상하였는데 흑야의 속한 이들 역시 슬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무료하였...
******** 박가 상온이 일러준 날은 새벽부터 그다지 날이 쾌청하지가 않았다. 딱히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었만 그렇다고 우의를 챙기지 않는 것은 걱정이 되는 하늘빛이었다. 박내시는 상온이 오라고 한 장소로 혹시라도 늦을까 잰걸음으로 걸어가면서도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구름의 색을 살피었다. "왔는가, 잠시 거 있으시게" 박상온은 그보다 먼저 도착하여 있었...
** 운영은 룡이 주인으로 있는 의원으로 기세 좋게 달려갔으나 그곳에서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은 돌아가지 않고 팔짱을 낀 채 한참을 문에 걸린 현판을 '장생의원' 네 글자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룡이 줄곳 자신이 주인으로 있는 의원을 언급할 때 '망할 놈의 곳'이라고 하며 이름을 말하길 꺼렸다. 운영은 그런 그를 그저 괴팍한 성격의 하나로 여기며 넘겼었...
"뭐가 오늘이라는 말입니까. 어디 칠순잔치라도 가기로 하셨는가요" 도태는 속시원히 말도 안 한 채 발만 동동 구르는 그에게 짜증 섞인 물음을 했다. "거사가!! 오늘이란 말일세!" 도태의 채근에 그는 잘못 뱉었다가는 역적으로 몰리는 게 일도 아닌 단어를 뱉더니 역시 비밀이었는지 뒷말은 웅얼거리며 삼키었다. "거사라뇨. 아니 저 모르게 지금 일 벌이고 있으셨...
*** 운영은 상황 파악이 안되는지 양손을 이상한 각도를 뻗은 채 한참을 있었다. 그는 도형을 그리는 마냥 손가락을 몇 번 허공에 휘젓더니 갑자기 영화당 난간을 넘어 아래로 뛰어내리렸다. 정확히 그가 찻상을 던진 그 자리였다. "단주!!" 도태가 놀라 소리쳤으나 그는 운영의 잔상만을 쫓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속도는 홀연히 사라진 단과 견줄 정도로 빨랐다...
*** 빠른 상황 판단과 반응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었다. 상이 바닥에 부딪히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고 그들이 있던 곳은 순식간에 적막이 흘렀다. 휑해진 공간에 남은 이는 룡을 안내했던 남자 도태 뿐 이었다. 그는 운영을 찾아왔던 손님의 존재를 알려야 했다. 운영은 그의 분노를 풀 곳이 없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를 싸늘히 바라보았다. "꺼.... 져" 애먼 ...
**** "내가 누군지는 알고 찾아온듯하니 소개는 안 하겠고. 사람의 인연을 이렇게 강요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고 전하주겠나" 확실히 눈앞에 있는 이라면 운영의 목숨을 겁박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도 고두놀이에서 이겨서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니었다. 한양에 올라와서는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서 치이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최근에 그 자신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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